[Korea News] 고통은 어떻게 예술을 빚는 연금술이 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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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view] 한국 추상미술 대가 김창열 화백 다룬 <물방울을 그리는 남자>

세계적인 명망을 가진 작가 쿠사마 야요이. 자신이 앓는 정신질환을 예술로 승화한 작가로 일컬어진다. 그는 자신을 지배한 시각적·정신적 이상 상태를 결함이나 약점으로 여기지 않았다. 세상이 동그란 점으로 뒤덮인 환각을 남들도 보게끔 캔버스에 그렸다. 이른바 ‘땡땡이’로 불리는 물방울 패턴이 그의 회화, 조각, 설치 작품 등에 장식됐다. 정신적 고통에 짓눌리기보다 예술행위를 통해 자신을 자유롭게 만들었다. 쿠사마의 이런 서사와 작품이 품은 이야기를 짐작하고 알고 있는 사람은 그를 대표하는 물방울 가득한 ‘호박’을 볼 때 싱긋 웃기도 한다. 쿠사마의 예술 세계에 대한 이해가 뒷받침된 덕분이다. 쿠사마는 “호박의 넉넉한 순수함에 매료됐다”고 자서전에서 밝힌 바 있다. 호박은 쿠사마에게 위안을 주는 한편 행복하고 즐거운 상상의 매개체로 존재한다. 

사실 특정한 고통이 예술의 질료가 된다는 이야기는 동서고금에 흔하다. 정신질환, 조울증, 간질, 거듭된 실연 등을 겪은 고흐, 청력을 잃은 베토벤이 그러했다. 불치병과 사형수의 고통을 절감한 도스토예프스키도 마찬가지였다. 혹자는 예술가에게 고통은 선물이라고 주장한다. 고통이 불타는 예술혼으로 승화했다고 강조한다. 고통, 슬픔, 아픔 등 ‘간난신고(艱難辛苦)’가 작품을 빚는 토양이자 원동력일 수 있다. 예술가가 간난신고에 쓰러진다면 작품은 없었을 테니까. 간난신고를 껴안고 이를 자신과 통합하면서 예술은 태어난다. 이를 놓고 우리는, 고통이 예술로 승화했다고 말한다.

반세기 물방을만 그렸던 화가

한 예술가가 50년 동안 한 오브제만 그렸다고 치자. 당신은 무슨 생각을 할까? 50년 동안 물방울만 그렸던 작가가 있다. 고 김창열 화백. 2021년 별세할 때까지 50년을 물방울만 화폭에 담았다. 김 화백의 아들도 그런 아버지가 궁금했나 보다. 이렇게 말한다. “어떤 사람이 되어야 이런 예속을 스스로 선택할 수 있을까? 단순한 인내심이나 집요한 야망일까, 아니면 조금은 미친 걸까?” 

<물방울을 그리는 남자> 포스터 (제공. 영화사 진진)
<물방울을 그리는 남자> 포스터 (제공. 영화사 진진)

다큐 영화 <물방울을 그리는 남자>는 이러한 아버지에 대한 아들의 궁금증에서 시작한다. 이 영화는 ‘물방울 화가’로 널리 알려진 한국 추상미술 거장 김창열 화백을 다룬다. 김 화백의 둘째 아들 김오안 감독이 프랑스 브리짓 부이요 감독과 함께 연출했다. “자라면서 가장 힘든 것은 아버지의 침묵”이었던 김 감독의 개인적 호기심에서 시작한 프로젝트는 거장의 미술 세계를 이해할 수 있는 단초들을 제공한다. 물론 말수가 극히 적은 김 화백이 이를 언급하진 않는다. 그는 여전히 카메라 앞에서 묵묵부답이다. 흡사 입 무거운 도인의 풍모지만, 산들바람이 도인의 도포자락을 들어올릴 때마다 물방울이 하나씩 떨어진다. 왜 물방울이 평생동안 이어질 오브제였을까.

김 화백은 영화에서 물방울을 그리는 행위에 대해 “모든 기억을 지우기 위한 것”이라고 말한다. 모든 악과 불안을 물로 지운다는 고백은 화폭에 맺힌 물방울을 다시 보게 만든다. 물방울은 냉큼 눈물로 보인다. 김 화백의 생애사가 잠시 투영된다. 북한 평안남도 맹산 출신인 그는 한국전쟁의 참혹함을 온몸으로 경험했다. 전쟁통에 중학교 동창들은 모두 죽었고, 김 화백에게 남은 건 살아남은 자의 슬픔과 홀로 살아남았다는 죄책감이었다. 무일푼으로 남한에 넘어왔지만, 북한에서 왔다는 이유로 총살 직전까지 갔다. 간신히 살아남았지만, 그는 어디에도 발붙일 수 없었다. 어쩔 수 없이 디아스포라로 내몰린 그가 선택한 곳은 뉴욕에 이어 파리였다. 여전히 돈은 없지만 예술혼이 충만했던 그는 화장실도 없는 마구간에서 그림을 그렸다. 어느 날, 그림 뒤에 튄 물방울이 햇살에 반짝이는 것을 보고 물방울에 자신의 삶과 예술을 담았다. 

그 물방울에는 전쟁 트라우마와 고향에 대한 그리움 등이 묻어 있었다. 눈물과 핏물이 뚝뚝 떨어졌다. 지워질 수 없는 고통을 지우기 위한 정화수였다. 어쩌면 진혼곡이었다. 살아남은 자가 먼저 세상을 떠난 이들을 잊지 않기 위한 끊임없는 연주였다. 전쟁 트라우마를 치유하고 죽은 자들의 영혼을 위로하기 위해 작업한다는 그의 고백 위에 물방울이 맺혔다. 

예술과 작품을 웅숭깊게 만드는 마법 같은 순간 

김 화백의 물방울은 ‘외상 후 성장’을 드러낸 징후이자 지표였다. ‘드러나지도 사라지지도 않는 무엇’이 깃든 오브제. 한 인간을 둘러싼 역사는 폭력적이고 참담했지만, 그는 이를 대물림하거나 되먹임 하지 않았다. 덕분에 악순환은 없었다. 고통은 예술로 승화했다. 평생 잊히지 않을 기억이지만, 김 화백은 그 기억에 짓눌리지 않고 그리고 또 그렸다.

<물방울을 그리는 남자> 스틸컷 (제공. 영화사 진진)
<물방울을 그리는 남자> 스틸컷 (제공. 영화사 진진)

외상은 누구에게나 예고없이 다가온다. 고통 없는 인생은 없다. 하지만 고통이 향하는 길은 각자 다르게 나타난다. 어떤 고통은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TSD)로 가고, 어떤 고통은 ‘외상 후 성장’(PTG)으로 간다. 이 갈림 길로 가기까지 다양한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한다. <물방울을 그리는 남자>는 후자로 작동한 경우다. 영화에서 아들은 아버지를 가리켜 “피를 순수한 물의 원형으로 변형하는 연금술사”라고 말한다. 기가 막힌 표현이다. 침묵 뒤에 가려진 아버지의 내밀한 어둠을 추적한 아들의 호기심과 탐구도 연금술이다. 예술과 작품을 더욱 웅숭깊게 바라볼 수 있는 시선을 부여한다는 의미에서. 아들은 캔버스가 아닌 스크린에 ‘김창열 초상화’를 그려냈다.

고통을 읽고 바라볼 수 있으면 예술은 더욱 깊어진다. 이 고통의 연금술은 다른 고통을 겪은 사람을 연결한다. 제각각 흘러가던 물방울이 연결돼 더 큰 물방울이 되어 우리가 되는 순간. 예술이 주는 마법 같은 순간이다. 그 순간 우리는 또 다른 의미와 감정을 만난다. 시적인 영상으로 관객을 홀리는 이 영화는 세계 3대 다큐멘터리영화제인 제28회 핫독스 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미국)에 월드 프리미어로 초청됐고, 제13회 DMZ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한국) 신진감독상, 제61회 크라쿠프영화제(폴란드) 실버혼상 등을 수상했다.

한편 김창열 화백은 지난해 91세 나이로 별세했다. 30대였던 1960년대 뉴욕으로 건너가 ‘서정적 추상’이라는 일생을 관통할 작품 세계의 정체성을 정립했다. 이후 파리로 거처를 옮겨 70~80년대 세계 무대에서 주목받으며 활동했다. 그가 세상을 떠난 해 5월 크리스티 홍콩 경매에서 1978년작 ‘CSH1’(182×227.5츠)이 작가 최고가로 낙찰된 바 있다. 당시 985만 홍콩달러(약 14억 원)를 기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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