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션리뷰] 크리스티 홍콩서 이성자 한국 여성 작가 최고가 경신… K아트 15점 낙찰
크리스티 홍콩 경매에서 한국 여성 작가 최고가 기록이 나왔다. 한국 추상화 1세대 작가 이성자(1918~2009) 화백이 주인공이다. 또 이 화백을 포함한 한국 작가 5명이 작가별 종전 최고가 기록을 넘어섰다. K-팝, K-콘텐츠, K-푸드 등과 함께 K-아트가 해외에서 약진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장면이다.
지난 5월 28일 홍콩 컨벤션센터에서 열린 크리스티 홍콩 상반기 이브닝 경매, 이성자의 ‘그림자 없는 산’(1962)이 경매에 올랐다. 전화가 거듭 울리고 현장 응찰이 오가면서 호가가 올라갔고 마침내 경매봉이 낙찰을 알렸다. 819만 홍콩달러(약 14억4천만 원). 당초 추정가로 제시됐던 400만~600만 홍콩달러를 훌쩍 넘어섰다. 낙찰자는 현장 응찰에 나섰던 해외 컬렉터였다. 프랜시스 벨린 크리스티 아시아태평양 총괄사장도 전화 응찰에 참여했을 정도로 열띤 경합이었다.
이 화백은 60여 년에 걸쳐 자신의 작품에 동양철학을 녹여 냈다. 이번에 낙찰된 작품 ‘그림자 없는 산’도 네모, 세모 등 기하학적 도형이 조화를 이루고 있다. 작품 내면에는 1951년 프랑스로 이주해 활동한 이 화백이 한국에 남겨 둔 자녀에 대한 그리움이 묻어난다는 평을 듣고 있다.
이번 낙찰로 앞선 이성자 작품 경매 최고가 기록도 깨졌다. 이 화백의 종전 해외 경매 최고가 작품 ‘갑작스러운 규칙’(1961)은 2022년 크리스티 홍콩에서 567만 홍콩달러(당시 환율, 약 9억 원)를 기록한 바 있다. 국내 경매에서 이성자 작품 최고가는 2022년 3월 케이옥션 경매에서 ‘샘물의 신비’가 세운 5억 원이었다.
이학준 크리스티코리아 대표는 “한국 미술시장에 큰 의미가 있는 날”이라며 “1950년대 이후 파리에서 김환기, 남관 등과 함께 활동했으나 여성이라는 이유로 평가절하된 측면이 있었는데 최근 저평가된 여성 작가들이 재조명 받는 흐름과 닿아 있다”고 분석했다. 이 화백의 다른 작품 ‘천왕성의 도시 4월 No.1, 2007(A City of Uranus, April No.1, 2007)’는 29일 경매에서 378만 홍콩달러(6억6500만 원)에 팔려 화제성을 증명했다.
이 화백은 근래 여러모로 주목을 받고 있다. 지난 4월 개막한 제60회 베니스 비엔날레에 개인전 <이성자: 지구 저편으로(Seundja Rhee: Towards the Antipodes)>가 열리고 있다. 이 화백 특유의 오묘한 색감이 돋보이는 회화 등 20여 점이 호평을 받고 있다. 비엔날레는 11월 24일까지 열린다. 또 5월말에는 이 화백이 생전에 프랑스에서 작업실 겸 주거공간으로 썼던 ‘아뜰리에 은하수’가 문화재급 건축물에 주어지는 ‘주목할 만한 현대 건축물(Architecture Contemporaine Remarquable)’로 지정됐다. 이 건축물은 이 화백이 직접 설계하고 건축가 크리스토프 프티콜로(Christophe Petitcollot)가 1993년 완공했다.
이와 함께 크리스티 홍콩 경매에서는 이성자를 포함한 정영두, 손동현, 전현선, 김수연 등 한국 작가 5명이 종전의 작가 최고가 기록을 경신하는 등 한국 작가들의 약진이 눈에 띄었다. 이번 경매에서 한국 작가들 작품은 총 17점이 출품돼 15점이 낙찰됐다. 대부분 작품이 추정가를 넘겨 팔렸다. 김창열의 ‘물방울’(8억7천만 원), 백남준의 ‘루트 66’(2억8천만 원), 이배의 ‘3-88’(2억1천만 원), 김환기의 ‘산과 달’ 119만7천 홍콩달러(2억1천만 원), ‘21-V-68 #21’이 88만2천 홍콩달러(1억5500만 원)에 낙찰됐다.
한편 이번 경매 최고 화제였던 앤디 워홀의 ‘플라워’ 연작 중 한 점이 6662만 홍콩달러(약 117억 원)에 낙찰됐다. 최소 추정가인 6280만 홍콩달러를 조금 웃돌았다. 르네 마그리트, 마르크 샤갈 등 20세기 거장 작품은 모두 팔렸다. 전반적으로는 고금리와 전쟁 등으로 인한 최근 미술시장의 흐름이 고스란히 이어졌다. 이번 경매 낙찰 총액은 총 9억6300만 홍콩달러(약 1696억 원)로 지난해 하반기 경매 낙찰 총액인 10억5천만 홍콩달러에 못 미쳤다. 소더비의 구조조정 소식도 들려오는 등 세계 미술시장 침체는 경매업계에도 찬바람을 불어넣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