흰 캔버스를 통해 존재의 본질을 환기하다

Ji Young Hu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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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컨템포러리 아트는 어떻게 전개되고 있을까? 여기 그것을 확인할 수 있는 아티스트 한 명이 있다. 사진작가 이명호. 그는 어쩌면 혜성처럼 등장했다는 수사가 어울리는 아티스트다. 때는 2008년 여름. 네덜란드 암스테르담 사진미술관(Fotografie Museum Amsterdam)은 당대 영향력과 가능성을 품은 작가들을 꼽아 세계적 명망의 사진전문지 <폼(foam)>에 소개했다. 이때 한국 아티스트로는 처음 이명호가 호명됐다. 그의 포트폴리오는 호평을 받았고, 이명호라는 이름은 세계 미술 무대에 단숨에 각인됐다.

Tree #18_2_4, 2021, Image ⓒ이명호
Tree #18_2_4, 2021, Image ⓒ이명호

그를 찾는 호명은 이어졌다. 세계 유수의 미술관이자 미국 LA에 자리한 장 폴 게티 미술관(J. Paul Getty Museum)은 2010년 2월부터 2011년 7월까지 그의 작품 ‘Tree#3’와 ‘Tree#11’을 전시했다. 또 그의 작품 5점을 구입해 영구 소장하기로 결정했다. 세계 10대 미술관에서 한국 아티스트 작품을 전시하고 소장한 첫 사례였다. 이 밖에 프랑스국립도서관(파리), 빅토리아국립미술관(멜버른), 푸시킨국립미술관(모스크바), 국립현대미술관 등 국내외 주요 미술관과 도서관에 그의 작품이 소장돼 있다. 특히 그는 뉴욕 최고의 사진전문갤러리 ‘요시밀로'(Yossi milo gallery) 전속작가로 뉴욕에서 두 차례 개인전을 여는 등 세계적인 명성을 쌓고 있다.

한국 미술계에서 보면 그는 특이한 이력을 가졌다. 수학을 전공하다가 사진으로 전향했고, 유학도 다녀오지 않았다. 이른바 연줄과 학연 등이 중요하게 작동하는 한국 미술계에서 그의 등장은 깜짝 놀랄 만한 사건이었다. 더구나 신진 작가가 세계 유수의 갤러리와 미술관에 작품을 전시한 것은 파격이었다. 기존 한국 미술 생태계에서 이 같은 일은 낙타가 바늘구멍에 들어갈 확률만큼 어렵기 때문이었다. 이랬기에 그의 데뷔는 한국 미술계에서 센세이션한 주목을 받았다. 더 중요한 것이 있다. 그는 놀라운 등장이후에도 다양한 실험과 탐구를 통해 자신이 드러내고자 하는 이야기를 끊임없이 진척하면서 웅숭깊게 만들고 있다. 나는 그를 점차 깊어지는 진행형의 아티스트라고 표현하고 싶다.

좌. Work View_ Color_Wine #1, Chateau Laroque, 2018  우. Color_Wine #1, Chateau Laroque, 2018
2018년 프랑스 샤또 라호끄(Chateau Laroque) 와이너리와 협업 작업 중인 작가와 완성품. ⓒ이명호
좌. Work View_ Color_Wine #1, Chateau Laroque, 2018  우. Color_Wine #1, Chateau Laroque, 2018
2018년 프랑스 샤또 라호끄(Chateau Laroque) 와이너리와 협업 작업 중인 작가와 완성품. ⓒ이명호

그의 창작 과정을 보자. 이명호는 하나의 컷이 나오기까지 촬영할 피사체와 장소를 신중하게 정한다. 사물의 본질에 집중하고자 피사체 뒤에 대형 캔버스를 설치하고 촬영한다. 그에게 캔버스는 ‘환기’(喚起)의 기능을 한다. 본질 탐구를 위한 상징적인 소재가 캔버스다. 캔버스 위에 표현하면 바로 작품이 되기 때문이다. 그렇게 촬영한 이미지를 의도에 맞춰 불필요한 부분을 지우는 과정을 거친다. 이렇게 탄생한 컷은 이명호의 손에서 오랜 시간 까다롭고 정성스러운 작업을 거친 결과물이다. 화면의 모든 면은 더하지도 덜하지도 않는다. 기본 값만 남은 정제된 본질을 지향하는 작품이다. 아티스트 개입을 최소화하고 캔버스 하나만으로 예술이 되는 경지. 그 때문일까? 한 프랑스 평론가는 이명호 작품을 시적이라고 표현했다.

(②회는 다음에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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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riter
Ji Young Huh
Ji Young Huh
Korean Art market observer & columni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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