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티스트] 한국 추상미술 이끈 단색화 대가 박서보, 91세로 타계

Jonathan Fee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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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추상미술을 대표하는 단색화 거장 박서보 화백이 지난 10월 14일 세상을 떠났다. 향년 91세. 지난 2월 폐암 3기 판정을 알렸던 그는 투병 중에도 선을 긋던 그림쟁이였다. 하지만 병마가 그의 선을 멈추게 했고, 더 이상의 ‘묘법’은 없었다.

작품 활동을 하고 있는 생전의 박서보 화백 (출처. 박서보 재단)
작품 활동을 하고 있는 생전의 박서보 화백 (출처. 박서보 재단)

박서보라는 이름은 늘 단색화와 함께했다. 이우환, 김환기 등과 함께 박 화백은 세계 미술계에 한국 단색화의 예술적 가치를 널리 알렸다. 이 덕분에 한국 현대미술의 한 추상화 경향을 일컫는 단색화는 한국 미술을 대표하는 장르가 됐다. 단색화는 세계 미술계에서 ‘Korean monochrome painting’을 넘어 ‘Dansaekhwa’로 표기되기도 한다.

박 화백은 한국 현대 추상미술 선구자 중 한 명이었다. ‘젊은’ 박서보는 대한민국미술전람회(국전)가 이해관계에 따라 수상작이 안배되는 풍토에 반기를 들었던 ‘반국전 선언’ 주역이었다. 이에 1956년 국전에 참여하는 대신 독립전시를 감행했다. 이듬해 그는 현대 추상회화의 한 경향인 앵포르멜 운동에 적극 나섰고, 1967년 그를 대표하는 묘법(Ecriture·描法) 작업을 시작했다. 묘법은 무수히 많은 선을 긋는 기법이다. 박 화백은 처음에는 연필로 캔버스에 끊임없이 선을 그었다. 전기 묘법시대(1967~1989)였다. 단색화 기수로서 독보적인 작품 세계를 구축했던 그는 후기 묘법시대에 들면서 방법을 바꿨다. 종이(한지)에 물감과 연필, 나무주걱 등을 이용해 선을 긋거나 밀어냈다. 2000년대 들어서는 유채색 작업을 시도하는 등 변화의 과정을 거쳤다.

선을 긋고 지우고 다시 긋는 단순 반복 행위처럼 보이는 이 작업은 구도자의 수양 행위를 연상케 한다. 이에 단색화는 명상적인 예술 형식으로 인식되기도 했다. 그는 2010년 회고전 간담회를 통해 “묘법은 도(道) 닦듯이 하는 작업”이라며 “그림이란 작가의 생각을 토해내는 마당이 아니라 나를 비워내는 마당이며 내가 나를 비우기 위해 수없이 수련하는 과정이 묘법”이라고 말했다.

자신만의 작품 세계를 구축한 박 화백은 세계적인 명성을 얻었다. 미국 뉴욕현대미술관과 구겐하임미술관, 프랑스 파리 퐁피두센터 등 세계 유명 미술관이 그의 작품을 소개하고 소장하고 있다. 2021년 프랑스 명품 브랜드 루이비통이 그의 작품을 이용한 핸드백을 내놓기도 했다. 제주도에는 박서보 미술관이 건립 중이다.

박서보 화백의 Ecriture No.171020 (제공. 서울옥션)
박서보 화백의 Ecriture No.171020 (제공. 서울옥션)

미술품 경매시장에서 그의 작품은 가격이 오를 가능성이 커졌다. 사실 그는 오랫동안 팔리지 않는 화가였다. 2000년대 그의 작품 경매 낙찰가는 3천만 원 안팎이었다. 그러다 2015년 이탈리아 베네치아 비엔날레(Biennale di Venezia)가 변곡점이 됐다. 당시 선보인 단색화가 크게 주목받았고, 이후 몸값이 높아졌다. 그는 지난해 한국 미술품 경매시장에서 작가별 낙찰 총액 3위(낙찰 총액 123억 4484만 원)에 올랐다. 올해 상반기에는 낙찰총액 37억 3340만 원으로 4위이나, 사후에 대부분 경매가가 오르는 것을 고려하면 추가 상승할 여지가 있다.

박 화백 작품 가운데 최고가는 지난 10월 5일 소더비 홍콩 경매에서 기록됐다. 1976년작 ‘No. 37-75-76’은 260만 달러(약 35억 원)에 새 주인을 찾았다. 이 작품은 5년 전 크리스티 홍콩 경매에서 200만 달러(약 25억 원)에 팔린 바 있었는데, 5년 새 10억 원 가량 올랐다. 그의 타계 직후인 25일 열렸던 서울옥션 경매에 출품된 그의 작품 3점은 모두 팔렸다. 초록을 주조색 삼은 ‘묘법 No.171020’(2017)은 1억 5500만 원, ‘묘법 No.2, No.3’(1996)는 1350만 원, ‘묘법 No.9’(1996)는 640만 원에 낙찰됐다.

묘법 연작으로 세계적인 명성을 얻은 그였지만, 한국 정치사와 맞물린 비판도 존재한다. 1970년대 박정희 독재정권의 국가 기록화 사업 참여와 1980년대 전두환 군사정권 당시 관변 예술단체 간부로 부역했다는 이력 때문이다. 이런 꼬리표는 올해 4~7월 열린 광주 비엔날레에서 크게 불거졌다. 광주 비엔날레가 ‘박서보예술상’을 신설했으나 거센 반대운동이 일면서 한 달여 만에 상이 폐지됐다. 정치 상황에 대한 저항 여부로 예술 세계를 재단하는 것이 바람직한가, 라는 과제를 한국 사회에 남긴 셈이다.

그의 작품은 더 이상 진전을 멈췄다. 다만 그의 작품 세계는 변화를 멈추지 않을 것이다. 생전 한 언론 인터뷰에서 “죽음도 삶이다, 죽음이라는 이름의 새로운 삶”이라고 했던 그의 말마따나, 평생 반복했던 선 긋기로 만든 예술은 시간과 시대 흐름에 따라 변화와 확장을 거듭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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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onathan Fee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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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이준수는 한국 주재 옥션데일리 필진이자 편집자이다. 언론, 사회적경제, 마을공동체, 공정무역 커피업계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했고 글을 쓰고 있다. 예술이 사회·시대와 동떨어져 있지 않으며, 예술이 지구와 인류의 지속가능성을 위한 도구가 될 수 있음을 인식하고 있다. 한국의 좋은 작품과 아티스트를 많이 소개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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