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트페어] 단순 행사를 넘어선 프리즈 서울의 지속가능한 전진을 기대한다
지난 9월 서울의 가을을 미술로 채색한 프리즈 서울(이하 프리즈)은 지난해보다 차분한 분위기에서 치러졌다. 지난해는 첫 행사에 경기 침체 기운이 상대적으로 옅었던 까닭에 시끌벅적했다. 올해 120개 갤러리가 참여한 프리즈는 나흘간 7만여 명을 맞이했다. 참여 갤러리나 관람객들은 지난해 글로벌 메이저 아트페어가 한국에 처음 왔다는 흥분을 가라앉히고 미술에 집중하는 경향을 보였다.
프리즈는 지난해와 마찬가지로 판매 규모를 밝히지 않았다. 지난해에는 6500억 원 가량 팔린 것으로 추산된 바 있다. 미술 관계자들은 올해 프리즈는 지난해와 비슷하거나 살짝 밑돈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거물급 작가의 최고가 작품이 줄었고, 미술애호가들도 여러 이유로 작품 구매에 신중해졌다는 등이 이유로 꼽혔다.
프리즈 첫날, 뉴욕 3대 화랑 중 하나로 꼽히는 데이비드 즈워너는 쿠사마 야오이의 그림 ‘붉은 신의 호박’을 580만 달러(약 77억 원)에 팔았다. 쿠사마는 한국 수집가들에게 선호도가 매우 높은 작가다. 이번 프리즈에서 판매액을 공개한 작품 가운데 가장 비쌌다. 한국인 수집가가 산 것으로 알려졌다.
하우저앤워스도 니콜라스 파티 작품을 125만 달러(약 17억 원), 라시드 존슨과 조지 콘도 작품을 각각 97만5천달러(약 13억 원), 80만 달러(약 10억7천만 원)에 판매했다. 이밖에 글래드스톤, 페이스, 리만머핀 등 글로벌 유명 갤러리는 프리즈 기간에 100억 원대 매출을 올렸다는 소식이 돌았다. 한국 미술시장과 수집가들에 대한 조사를 통해 잘 팔릴만한 작품을 선보였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첫해보다 차분해진 분위기속에서 한국 미술시장에 대한 호감은 전반적으로 높아진 것으로 보인다. 해외 갤러리 관계자들은 한국 미술시장 성장과 역동성을 언급했다. 아시아 미술시장 허브 가능성을 조심스레 점치는 분위기도 흘러나왔다. 한국 한 갤러리 대표는 “프리즈를 통해 동시대 미술시장 흐름을 확인할 수 있었고, 서울이 아시아 미술시장 허브로서 가능성을 제대로 보여줬다”고 말했다. 이를 방증하듯, 중국인 단체 관람객 등이 투어를 하는 모습도 눈에 띄었다. 홍콩, 대만, 일본 아시아 수집가들이 프리즈에 맞춰 서울을 방문한 것으로 보였다.
파블로 피카소, 마르크 샤갈, 오귀스트 르느와르 등 쉽게 접할 수 없는 거장들의 향연에 관람객들은 긴 줄로 화답했다. 고대 거장 작품부터 20세기 후반 걸작으로 짜인 ‘프리즈 마스터즈’는 왜 프리즈인지 보여줬다. 단순한 눈호강을 넘어 감각의 제국에 들어선 느낌을 선사했다.
영국 갤러리 로빌란트 보에나가 대표적이었다. 이들은 서양 미술사를 아우르는 작품을 선보였다. 부스 전면에 놓인 제프 쿤스의 폭 3m 조각 ‘게이징 볼’은 관람객 발길을 멈추게 만들었다. 360만 달러(약 48억 5천만 원)에 달하는 이 작품은 사진 세례를 받았다. 부스에 있는 17세기 걸작 안드레아 바카로의 ‘홀로페르네스의 목을 베는 유디트’도 관람객을 압도했다. 이밖에 안토니오 카날레토, 가스파르 반 위텔 등 18세기 거장들과 샤갈, 루치오 폰타나, 데미안 허스트 등 20세기 거장들이 어우러져 긴 줄을 연출했다.
프리즈는 지난해보다 다양성 측면에서도 점수를 얻을 만했다. 초고가 작품이 줄어들었지만, 그것은 문제가 아니었다. 지난해 첫 회였기에 이목을 끌기 위해 필요했던 깜짝 쇼는 더 이상 유효하지 않았다. 알다시피 예술은 다양성이 생명 아니던가. 다양한 세계관이 투영된 다양한 가격대의 작품이 프리즈를 채웠다. 프리즈가 되레 신경 쓴 것은 조명 등 전시장 구성, 부스 배치와 동선, 관람객과 소통이었다고 한다. 감각을 일깨울 수 있는 작은 디테일이 프리즈를 더욱 빛나게 했는지도 모른다.
이런 프리즈의 영향으로 키아프도 성장했다는 평가도 나왔다. 지난해 프리즈 쫓기에 급급했던 탓에 비교에 시달렸던 키아프가 올해는 비교 강박에서 탈피한 모습을 보였다. 지난해가 “뱁새가 황새 쫓다가 가랑이 찢어진다”는 한국 속담을 연상케 했다면 올해는 뱁새만의 영리한 전략을 선택했다. 젊은 역동성은 키아프의 또 다른 전진을 기대하게 만들었다.
이제 시선은 내년으로 향한다. 프리즈는 그저 하나의 아트페어이자 이벤트가 아닌 그 이상이었다. 서울을 미술 도시로 탈바꿈하게 만든 동력원이었다. 프리즈는 서울의 9월을 기대하게 만드는 중요한 이벤트가 됐다. 아시아 미술시장 허브를 꿈꾸는 서울에서 프리즈의 세 번째 계절을 다시 기다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