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션리뷰] 이중섭 ‘시인 구상의 가족’, 70년 만에 첫 경매
양대 경매사의 4월 경매는 그동안 경매에서 보기 힘들었던 작품들을 선보인다. 실험미술 작가인 이건용의 퍼포먼스 결과물을 비롯해 근대화가 이중섭의 작품이 70년 만에 경매에 오른다. 앙리 마티스의 작품도 국내 경매에는 처음 선보인다.
서울옥션은 23일 서울 강남센터에서 총 113건을 출품한다. 가장 눈에 띄는 작품은 실험미술 작가인 이건용의 대표 퍼포먼스 ‘달팽이 걸음’의 결과물이 처음 경매에 나온다. ‘달팽이 걸음’은 쪼그려 앉은 채 분필로 선을 그리는 동시에 맨발로 그 선의 일부를 지우며 나아가는 퍼포먼스다. 경매에 나온 작품은 2007년 인천 부평역사박물관에서 열린 ‘한국-터키 수교 50주년 기념전’에서 진행한 퍼포먼스 결과물이다. 10점이 한 세트로, 추정가는 2억∼3억 원이다.
단색화 작가 하종현의 ‘접합’ 연작과 박서보의 ‘묘법’ 연작을 비롯해 문신, 이대원, 남관 등 근대미술작가의 1940∼50년대 회화 작업, 극사실주의 화가 고영훈의 대형 설치작업 ‘위'(We) 등도 경매에 나온다.
고미술품 분야에서는 사료 가치가 풍부한 고지도와 희귀 고문서가 출품된다. 특히 시작가 3천만 원에 나온 ‘신정만국전도’는 1855년 일본 정부가 제작한 지도로 동해를 일본해가 아닌 ‘조선해'(朝鮮海)로 표기했다. 지난해 KBS ‘TV쇼 진품명품’에 소개돼 감정가 5천만 원으로 평가받았다. 이밖에 ‘모란도'(추정가 4억∼6억 원) ‘곽분양행락도'(3억∼5억 원), ‘요지연도'(4억5천∼8억 원) 등 채색 병풍화도 경매된다. 출품작은 서울옥션 강남센터에서 무료로 볼 수 있다.
뒤를 이어 24일에는 케이옥션이 서울 강남구 본사에서 70년 만에 경매에 출품된 이중섭 작품을 비롯해 김환기의 뉴욕시대 점화 등 총 130점, 약 148억 원어치 경매를 선보인다.
가장 눈에 띄는 작품은 박수근과 함께 한국 근대서양화의 양대 거목으로 꼽히는 이중섭의 ‘시인 구상의 가족’이다. 슬픈 사연을 품은 이 작품은 1955년 이중섭이 시인 구상에게 줬다. 당시 이중섭은 서울과 대구에서 연 개인전이 크게 흥행한 덕분에 한국전쟁으로 헤어져 일본에 있는 가족과 재회할 희망에 부풀었다. 그러나 흥행 성공에도 불구하고 작품 판매 대금을 받지 못한 탓에 일본으로 갈 수 없었다.
낙담한 이중섭은 오랜 친구인 구상의 집을 찾았다. 구상이 아들과 자전거를 타는 모습을 보자 눈물이 났다. 자전거를 사주겠다고 약속한 자신의 아들 생각이 난 까닭이다. 그리고 행복한 구상 가족의 모습을 그리면서 자신의 모습도 오른쪽에 덩그러니 넣었다. 이중섭은 구상에게 “가족 사진”이라며 그림을 건넸다. 그림의 왼쪽 끝에는 구상 가족을 등지고 선 소녀가 나오는데, 구상의 집에서 잠시 머물던 소설가 최태응의 딸이다. 행복해 보이는 가족의 양쪽에 어쩌면 동병상련을 느낄 법한 이중섭과 소녀가 배치돼 슬픔과 그리움도 함께 불러 일으킨다.
케이옥션은 “이중섭의 손이 원근법을 무시하고 구상 아들의 손과 닿아 있다”며 “이중섭의 다른 작품에서도 길게 늘어난 팔이 가족, 동물, 타인들과 연결되는데, 이는 그만의 고유한 기법으로 현실을 잊고 싶은 이중섭 마음 속 이상 세계인 듯하다”고 전했다. 시작가는 14억 원이다.
이와 함께 김환기의 1973년 뉴욕시대 점화작품 ’22-X-73 #325’이 시작가 35억 원에 경매에 오른다. 앙리 마티스의 아티스트북 ‘재즈’(추정가 9억5천만~12억 원)도 국내에는 처음 경매에 출품된다. 이 작품은 판화 20점과 글을 모은 것으로 20점이 완전한 세트로 출품되는 일이 드물어 희소성이 높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경매 프리뷰는 경매 당일까지 케이옥션 전시장에서 무료로 관람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