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션리뷰] 세계에서 두 번째로 비싼 책에서 만나는 실낙원의 오래된 미래

Jonathan Fee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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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12월 소더비 뉴욕 경매. 놀라운 소식이 전해졌다. 1천만 달러를 훌쩍 넘는 책이 탄생했다. 북미 대륙에 서식하는 조류 489종 1065마리를 435점 사실화에 담은 ‘북미의 새들’(Birds of America)이 ‘세계에서 가장 비싼 책’이라는 타이틀을 손에 쥐었다. 당시 경매 낙찰가는 1150만 달러. 이 기록은 2013년 11월 소더비 경매에서 미국에서 처음 인쇄된 ‘베이 시편집’(The Bay Psalm Book)(1420만 달러)이 낙찰되기 전까지 유지됐다.

<새를 사랑한 화가> 스틸컷 (존 제임스 오듀본 초상화) (제공: 영화사 찬란)
<새를 사랑한 화가> 스틸컷 (존 제임스 오듀본 초상화) (제공: 영화사 찬란)

‘북미의 새들’이 한때 세계에서 가장 비싼 책이었던 이유가 있다. 이 책은 세상에 나오기까지 30년 이상 필요했다. 이 중에서 그림을 제외한 인쇄를 거쳐 책이 만들어지기까지 12년(1827~1838)이 걸렸다. 새를 향한 존 제임스 오듀본(1785~1851)의 끈질긴 천착이 빚은 결과다. 어린 시절부터 새에 빠진 그는 11살부터 끈질기게 관찰하고 그렸다. 새의 서식지 환경과 천적도 그림에 함께 담았다(물론 세밀하게 그리고자 많은 새를 박제한 사실은 여전히 비판을 받고 있다). 어쨌든 이 같은 노력에 힘입어 ‘북미의 새들’은 총 4권으로 완성됐다. 생태학적 가치뿐만 아니라 예술성에서도 높은 평가를 받았다. 이 책은 인류사의 위대한 도감이자 조류학계 업적으로 남아 있다. 초판 200부가 발간됐지만 대부분 없어지고 불완전한 초판 120개만 남아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소더비 경매에서 낙찰된 책은 온전하게 보존된 초판본 사본이었다.

새를 사랑한 화가를 통해 바라본 산업화 이전의 미국

최근 개봉했던 다큐멘터리 영화 <새를 사랑한 화가>는 이런 오듀본을 집중 조명한 다큐가 아니다. 매일 새벽 3시 일어나 오후까지 새를 관찰하고 그림으로 묘사하기를 수십년 동안 반복한 불굴의 오듀본은 여기에 없다. 다큐는 대신 그의 발자취가 찍힌 주변을 탐색한다. 1803년 유럽을 떠나 미국에 당도한 오듀본이 새를 관찰하고자 탐험한 미시시피강 중심으로 이야기는 펼쳐진다. 미시시피강 인근 중공업단지와 습지를 훑으며 시작한 다큐는 오듀본이 새를 탐색했던 시절과 대비한다. 실은 약 200년 시차를 두고 새를 좇는 모험의 배경에 있던 생명과 선주민, 자연이 다큐의 주인공이다.

<새를 사랑한 화가> 포스터 (제공: 영화사 찬란)
<새를 사랑한 화가> 포스터 (제공: 영화사 찬란)

오듀본의 그림은 단순한 조류 박물지(博物誌)가 아니다. 스미스소니언협회가 선정한 위대한 미국인 예술가 중 한 명인 오듀본의 관찰과 기록이 묘사했던 미국의 새들은 화려하고 역동적이다. 새들이 서식하고 비상했던 환경도 그러했다. 산업화된 인공의 세계가 주는 건조함과 대비된다. 물론 이를 단순하게 미국의 과거 자연에 대한 향수로 해석해선 안 된다. 새 그림속에 담긴 함의는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다큐는 책에 담긴 새들도 함께 좇는다. 특히 여객 비둘기, 캐롤라이나 앵무새, 상아부리 딱따구리 등 멸종되거나 찾기 힘든 새들이 등장한다. 책이 가진 중요한 가치이자 사료다. 당시 북미에서 서식하던 새들의 생태를 확인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의 세밀화가 지닌 중요한 가치는 또 있다. 앞서 언급했듯, 그는 자연계 일부로서 새를 담았다. 새와 공존한 자연과 생명은 물론 선주민들과 맺은 관계도 소홀하지 않았다. 새의 생태와 서식지를 알기 위한 노력의 일환이었다. 그림과 책 완성을 위한 과정이었던 한편 오듀본은 생태계가 곧 ‘연결’이라는 점을 알고 있었던 것일까? 이 책이 위대한 도감으로 칭송을 받는 이유도 거기에 있다.

멸종에 맞닥뜨린 새들의 이야기를 좇자면, 멸종이 단순한 자연환경 변화에 의한 것이 아님을 다큐는 보여준다. 자신들의 터전에서 쫓겨난 선주민들도 마찬가지다. 흥미로운 지점은 미시시피강 유역의 과거와 현재가 근현대 미국 회화를 통해 드러난다. 인류 특히 백인들이 자행한 파괴와 침략이 이 생태계를 어떻게 바꿨는지 목격할 수 있다. 특히 새와 선주민을 몰아낸 신대륙 이주민(백인)의 ‘종교적 운명론’은 코웃음을 자아내기까지 한다.

실낙원의 슬픈 아우성

<새를 사랑한 화가> 스틸컷 (제공: 영화사 찬란)
<새를 사랑한 화가> 스틸컷 (제공: 영화사 찬란)

상기해보자. 이 다큐는 오듀본에 관한 이야기가 아니다. 예술로 투영한 역사와 자연 다큐멘터리다. 새를 사랑한 화가와 작품을 통해 미국 근현대사와 환경의 변화를 다룬다. 모름지기 시대와 사회를 완벽하게 벗어난 예술은 없다. 세밀하게 그린 새 도감은 시대상을 기록한 박물지다. 개척자 정신이라는 명분을 걸고 파괴한 ‘실낙원’이 있다. 영국 시인 밀턴이 지은 실낙원은 인간의 원죄에 대한 그리스도의 속죄에 희망을 걸지만, 이 실낙원에 그런 희망이 있을까?

<새를 사랑한 화가>는 한편으로 미국의 역사를 훑는 다큐다. 이주민 침략자들이 신이 계시했다며 들먹인 ‘명백한 운명’은 가혹했다. 이는 신의 계시도 뭣도 아닌 무력일 뿐이다. 선주민과 자연은 이런 무력 앞에 무기력하게 쫓겨났다. 선주민 부족장들이 미국 대통령에게 자연을 소중히 해야 한다며 경고하지만, 주류 백인과 자본에 씨도 먹히지 않을 소리다. 그저 척박한 보호구역 설정을 통해 한 줌의 동정을 던질 뿐이다. 또 미시시피강 유역에 자리한 거대 석유자본의 횡포는 습지를 없애거나 생태계를 교란한다.

죽음의 그림자가 드리웠지만, 자연이 만만하게 물러서진 않았다. 2005년 미국 남부를 덮친 허리케인 카트리나가 파괴당한 자연의 복수처럼 다가왔다. 뉴올리언스를 초토화한 카트리나는 오듀본과도 관계를 맺었다. 그의 이름을 딴 오듀본 동물원, 오듀본 수족관이 큰 피해를 입었다. 이런 상황을 다룬 이유는 뒤이어 나왔다. 자연재해는 차별하지 않지만, 자연재해 이후는 차별이 2차 가해로 다가왔다. 구호와 보상은 백인만을 향한 선처일 뿐, 선주민과 유색인종은 열외인종이다. 실낙원은 비주류 약자에게 잔혹사를 이어간다.

<새를 사랑한 화가> 스틸컷 (제공: 영화사 찬란)
<새를 사랑한 화가> 스틸컷 (제공: 영화사 찬란)

다큐를 보고 있으니, 실낙원의 슬픈 아우성이 웅성거린다. 뉴욕의 한 블록에 있는 오듀본 그림을 본 뜬 벽화가 등장하는데, 뭉클함과 슬픔이 밀려든다. 오듀본이 쫓았던 새들이 사라져 도감에만 박제되는 동안 우리는 무슨 짓을 한 것일까. 케리 제임스 마샬(Kerry James Marshall)도 함께 떠올랐다. 지난 2018년 소더비 경매에서 ‘지나간 시간들(Past Times)’이 2110만 달러에 낙찰, 생존하는 흑인 화가 작품 중 최고가를 기록했던 마샬은 2020년 오듀본 그림에 영감을 받은 작품(‘Black and part Black Birds in America’)을 선보였다. 사회적 책임감을 미술로 표현하고 사회비판적 시선을 견지하는 그의 작품 세계를 봤을 때, 오듀본 이후에도 파괴의 역사를 거듭하는 당대를 꼬집고 있는 듯하다.

지나간 시간이 무조건 아름답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다. 어쩌면 이 다큐는 장소와 그 장소를 형성했던 생태계를 애도하는 이야기일지도 모른다. 오듀본이 담은 새 그림은, <북미의 새들>이 한때 세계에서 가장 비싼 책이 되는 동안, 미시시피강이 유유히 흐르는 동안에도 멸종에 저항하는 눈물 나는 분투처럼 보인다. 그것이 뉴욕 역사협회가 원본 그림 435점을 소장하고 있는 이유는 아닐까! 2011년 구글이 오듀본 탄생 226주년을 축하하고 그의 이름을 딴 자연보호단체인 국립 오듀본 협회와 주립공원(켄터키주 오듀본 기념 주립 공원)이 있는 이유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이 다큐는 제50회 로테르담국제영화제(2021), 제47회 도빌아메리칸영화제(2021) 등 세계 유수 영화제에 초청받았다. <북미의 새들>에 있는 아름답고 섬세한 그림을 만날 기회가 있다면, 이 다큐를 먼저 만나봐도 좋겠다. 그리고 <북미의 새들>이 다시 경매에 나온다면 역시 소더비가 담당할 것 같다. 여담으로, 현재 소더비는 미술품, 크리스티는 보석류가 유명하지만, 1744년 설립한 소더비의 시작은 책이었다. 작은 책방을 운영하던 새뮤얼 베이커는 고서적 희귀본 수백 권을 경매에 붙였다. 826파운드(오늘날 시세로 약 29만 달러)에 달한 첫 경매 덕분에 소더비는 책 경매를 주사업으로 가져갔고 이는 1950년대까지 이어졌다. 소더비를 경유한 주요 경매물품은 미술품보다 책이 훨씬 더 많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책은 때로 사유이자 예술품이다. 어떤 책과 그림은 이를 접한 사람의 마음에 똬리를 틀고 행동을 바꾼다. 이는 사회와 세상을 바꾸는 단초가 되기도 한다. ‘새를 사랑한 화가’가 인도하는 두 세기에 걸친 다큐 여정을 따라가 볼 것을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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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onathan Feel
Jonathan Feel

김이준수는 한국 주재 옥션데일리 필진이자 편집자이다. 언론, 사회적경제, 마을공동체, 공정무역 커피업계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했고 글을 쓰고 있다. 예술이 사회·시대와 동떨어져 있지 않으며, 예술이 지구와 인류의 지속가능성을 위한 도구가 될 수 있음을 인식하고 있다. 한국의 좋은 작품과 아티스트를 많이 소개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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