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션리뷰] 1993년 뉴욕-2023년 서울… 30년 만에 다시 뭉친 ‘수줍은’ 전시회

Joon Bae Ki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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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과 뉴욕 그리고 30년, 시공간을 건너 이어진 전시는 어떨까? 이를 확인할 수 있는 전시가 서울에서 열리고 있다. 시작은 1993년이었다. 그해 9월부터 11월까지 뉴욕 3곳 갤러리에는 흥미로운 전시가 열렸다. 흥미로운 지점 중 하나는 기존 전시공간이 아닌 엉뚱한 공간을 전시공간으로 삼았다. 니콜 크래그스브룬 갤러리의 지하, 스레드 왁싱 스페이스 갤러리의 뒷방, 샌드라 게링 갤러리의 서고가 그 공간들이었다. 전시명은 ‘오, 수줍음(Oh, Shyness). 뉴욕에서 활동했던 작가 4인(에란 쉐르프, 시오번 리들, 루카 부볼리, 김범)은 세상과 조심스레 거리를 유지하는 것을 ‘수줍음’으로 규정하고 이에 맞춰 지하·뒷방·서고를 전시공간으로 골랐다.

이 전시가 30년 뒤 서울에서 변주됐다. 작가들이 30여년 만에 의기투합, 서울시립 북서울미술관에서 같은 이름으로 전시에 나섰다. 특히 1993년 전시의 ‘수줍음’ 정신을 살려 북서울미술관 내외부 유휴공간을 활용했다. 30년 만에 리뉴얼된 이번 전시회는 지하주차장, 미술관 1~2층, 2층에 딸린 야외 테라스 등에서 총 25점이 관람객을 만나고 있다. 주최측은 국문과 영문으로 전시 지도를 만들어 관람 편의를 돕고 있다.

물론 전시 준비 과정은 쉽지 않았다. 작가들이 서로 물리적으로 떨어진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김범 작가가 이에 미술관을 수시로 찾아 미술관 곳곳을 촬영했다. 다른 해외 거주 작가들이 이 영상을 확인하고 전시 기획과 공간에 어울리는 작품을 선별했다. 이어 한국을 방문해 작품을 설치했다. 기획에 함께 참여한 유민경 서울시립 북서울미술관 학예연구사(큐레이터)는 “1993년 기획 정신을 그대로 살렸다”며 “작가들 모두 과거를 회상하며 매우 즐겁게 작업했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왼쪽: 물품보관함 내부에 있는 루카 부볼리의 작품 ‘거의…내부의 우주 #1’을 관람하는 모습. ⓒ김준배 
오른쪽: 보관함 작은 창을 통해 본 작품. 사진 제공: 북서울미술관
왼쪽: 물품보관함 내부에 있는 루카 부볼리의 작품 ‘거의…내부의 우주 #1’을 관람하는 모습. ⓒ김준배 
오른쪽: 보관함 작은 창을 통해 본 작품. 사진 제공: 북서울미술관

눈에 띄는 작품이 있다. 물품 보관함 내부에 설치한 루카 부볼리의 ‘거의… 내부의 우주 #’는 68개 보관함 중 33번째 보관함을 활용했다. 보관함 바깥의 작은 창을 통해 작품을 볼 수 있다. 보관함에는 애니메이션 ‘코비드빌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주인공이 감염병과 환경오염을 피해 탈출하던 중 넘어져 소용돌이에 떨어질 뻔한 장면을 표현한 점토조각이 있다. 두 팔 중 보관함 창문 쪽에 있는 팔이 뒤에 있는 팔보다 두 배 이상 두꺼운데, 이는 원근법 때문이다. 이 덕분에 보관함 내부가 보관함을 넘어 더 큰 공간으로 계속 변신하는 것처럼 보인다. 

1993년 전시됐던 작품도 눈에 띈다. 이번 프로젝트를 위해 특별히 마련한 ‘시대의 방(Period Room)’에는 1993년 뉴욕에서 선보였던 루카 부볼리의 ‘수퍼 히어로-아님’이 전시돼 있다. 또 김범의 ‘무제(문 두드림 #3)’는 240*102*33cm 크기의 스피커가 내장된 문으로 1993년 전시 때와 동일한 모양으로 재현됐다. 이 작품은 내장된 스피커를 통해 문 두드리는 소리를 낸다.

1993년 전시됐던 루카 부블리의 ‘슈퍼히어로-아님’이 벽에 설치돼 있다. ⓒ김준배
1993년 전시됐던 루카 부블리의 ‘슈퍼히어로-아님’이 벽에 설치돼 있다. ⓒ김준배

이 밖에도 김범 작가가 1993년 뉴욕 전시회 모습을 촬영한 기록영상과 당시 행사 책자도 만날 수 있다. 주최측은 “30년이 지났지만, 4명 작가 작업에 공통적으로 존재했던 수줍음의 태도가 그동안 어떻게 지속되고 변화했는지 조망해볼 수 있는 기회”라고 이번 전시를 소개했다. 30년 만에 뉴욕에서 서울로 옮겨 재현된 이번 프로젝트에 대한 반응은 긍정적이다. 오소연 북서울미술관 주무관은 “관람객들은 기존 화이트큐브 관람 방식에서 벗어나 넓은 미술관 곳곳을 다니며 작품을 자유롭게 감상할 수 있다”며 “덕분에 ‘작품을 찾았다’는 희열감을 느끼면서 작품 자체에 집중할 수 있으며, 젊은 층 반응이 특히 좋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관람객 가운데 ‘작품이 수줍게 놓여있다’는 말을 듣곤 하는데, 이는 작품을 제대로 이해했음을 알 수 있는 대목”이라고 덧붙였다.

1993년 당시 뉴욕 전시회를 촬영한 김범 작가의 영상도 볼 수 있다. ⓒ김준배
1993년 당시 뉴욕 전시회를 촬영한 김범 작가의 영상도 볼 수 있다. ⓒ김준배

유 학예연구사는 “스펙터클하고 화려한 작품이 이목을 끌기 쉽지만, 소박하고 여린 작품도 관람객에게 반향을 일으킬 수 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며 “미술관이 관람객에게 새롭게 다가가는 계기가 됐다”고 말했다. 이번 전시회는 1월 29일까지 진행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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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oon Bae Kim
Joon Bae Kim
Reporter and edit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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