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션리뷰] 민주화운동을 품은 광주정신에서 행성적 관점으로 흐르는 예술의 물길

Jonathan Fee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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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비엔날레 주전시장 입구 전경 Ⓒ옥션데일리
광주비엔날레 주전시장 입구 전경 Ⓒ옥션데일리

한국에서 광주는 특별한 위상을 가진 도시다. 1980년 5월에 벌어진 매우 중요한 역사 때문이다. 5∙18민주화운동은 당시 쿠데타로 정권을 장악한 군사정권에 대한 인민들의 강력한 저항이었다. 민주화를 향한 뜨거운 열망이었다. 이에 군사정권은 총칼로 무자비한 탄압을 가했다. 인민들은 무고하게 희생당했다. 하지만 피로 물든 민주화운동은 그것으로 끝이 아니었고, 이후 군사정권을 무너뜨린 가장 강력한 정신이 됐다. 이른바 ‘광주정신’은 한국사회와 민주화를 지탱하는 강력한 의제가 됐다. 

1995년 시작해 아시아 최대 규모 국제미술제로 자리잡은 광주비엔날레 기저에는 이 같은 광주정신이 있다. 올해 광주비엔날레를 총괄한 이숙경 예술감독(영국 테이트모던미술관 국제미술수석큐레이터)도 광주정신을 강조했다. 이에 내세운 주제가 ‘물처럼 부드럽고 여리게’였다. 이 주제는 ‘세상에서 물이 가장 유약하지만, 공력이 아무리 굳세고 강한 것이라도 그것을 이겨내지 못한다’는 뜻을 담은 노자의 <도덕경> 78장 ‘유약어수(柔弱於水)’에서 착안했다. 이질성을 포용하며 만물에 유연하게 스며드는 물의 속성을 빗대 저항, 공존, 연대, 돌봄을 예술 작업을 통해 드러내겠다는 심산이었다.

블레베즈웨 시와니의 설치미술 작품 Ⓒ옥션데일리
블레베즈웨 시와니의 설치미술 작품 Ⓒ옥션데일리

첫 전시부터 물을 맞닥뜨렸다. 남아프리카 출신 블레베즈웨 시와니의 설치 작품이다. 2개의 영상이 흐르고, 영상을 장식하는 여성들의 퍼포먼스는 유려하고 아름답다. 아픈 상처를 어루만지는 듯한 퍼포먼스는 저항, 포용, 회복의 몸짓처럼 감각됐다. 작가의 이력 때문인지도 모른다. 그는 죽은 자와 산 자의 세계 사이를 잇는 영적 치유자 ‘상고마’ 전수자다. 설치작품 옆에는 천장에서 넝쿨처럼 내려온 밧줄과 흙이 있는데, 원시림을 연상케 만든다. 죽은 자와 산 자의 연결을 뜻하는 밧줄을 통해 남아공의 전통적 치유방식을 형상화한 작가는 인간과 자연의 관계를 모색하는 사유를 제공했다. 또 후기 인상주의 화가 폴 고갱의 작품 ‘우리는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가’를 떠올리게 만든다.

팡록 슐랍의 목판화 ‘광주 피어나다’ Ⓒ옥션데일리
팡록 슐랍의 목판화 ‘광주 피어나다’ Ⓒ옥션데일리

궁금했다. 지금의 우리는 어디에 있는 것일까? 흐르는 물처럼 전시 동선을 따라갔다. 이윽고 버지니아 울프를 만났다. 그는 인생을 이렇게 말했다. “체계적으로 나란히 놓인 주마등 같은 것이 아니라 은은한 광륜처럼 첫 각성의 시간부터 마지막 순간까지 우리를 감싸주는 반투명 봉투 같은 것”. ‘은은한 광륜’으로 호명된 전시장은 1980년 광주를 소환했다. 말레이시아 예술집단 팡록 술랍과 오윤 작가의 목판화가 조응하는 풍경은 과거를 되짚고 현재를 재구성했다. 집단 저항에 아우른 연대, 애도의 순간이 켜켜이 쌓였다. 특히 5.18 희생자를 장미로 형상화한 작품들은 우리가 장미에게 빚진 지금을 보여준다. ‘빵과 장미’라는 인류사의 오래된 구호도 겹친다. 장미는 총보다 약하지만, 한 명씩 장미를 들고 있다면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정서적 울림은 예술의 사회적 의미를 되새긴다. 

이어지는 소주제는 공간과 깊이를 넓히고 확장했다. ‘조상의 목소리’는 식민주의에 희생당한 선조를 기리며 서구의 근대성 추구에 가려진 전통의 가치를 되짚는다. 이는 다시 식민지와 신자유주의 영향 아래 디아스포라, 이주민, 난민 등이 처한 차별과 아픔을 다룬 ‘일시적 주권’에 닿는다. 특히 가부장제로 인한 여성 억압을 다룬 장지아 작가의 ‘아름다운 도구들’은 억압과 금기에 저항해야 하는 이유를 강렬하게 건넨다. 여전히 일상에서 혐오와 차별을 겪어야 하는 존재들에 대한 연민도 놓치지 않는다. 팬데믹, 전쟁 등으로 악화된 경제사회적 소외와 차별, 배척은 각기 다른 문화적 맥락에 놓여있지만, 이를 각자도생으로 대응해선 안 된다는 문제의식도 빠지지 않는다.

굴 주산지 통영 굴을 활용한 앨런 마이컬슨의 ‘패총’ Ⓒ옥션데일리
굴 주산지 통영 굴을 활용한 앨런 마이컬슨의 ‘패총’ Ⓒ옥션데일리

결국 전 지구적 이슈들이 연결돼 있음을 보여주는 ‘행성의 시간들’이 마지막 소주제를 장식한다. 지구인으로서 인류 공동의 문제를 사유케 하는 작품들을 만난다. 가령 앨런 마이컬슨의 ‘패총’과 같은 작품이다. 그는 한국의 주요 굴 산지인 통영에서 가져온 굴 껍질을 쌓아 영상을 투사한다. 영상은 산업화와 오염으로 급격하게 변한 뉴욕의 두 수로(뉴타운강, 고와누스 운하)를 따라 촬영했으며 뉴욕현대미술관에서 선보인 바 있다. 오늘날 뉴욕을 포함한 옛 레나페(델라웨어) 지역에서 지역민의 먹을거리였던 굴에 경의를 표하면서 선주민의 환경 실천이 자연과 균형을 이루고 있었음을 보여주는 작품이다. 이곳에 놓인 작품들은 지구라는 행성이 인간과 비인간이 함께 사는 곳임을 자각하는 행성적 관점을 스며들게 만든다. 이곳을 둘러보며 에리히 프롬이 떠올랐다. 자신이 태어난 특정 지역이 아니라 세계 전체가 그의 나라라고 말했던 프롬의 사유가 떠오르는 전시공간이다.

전시는 광주정신부터 근대성 비판, 탈식민주의, 생태와 기후 등으로 나아간다. 아울러 이 모든 것이 연결돼 있음을 보여준다. 이숙경 예술감독의 말마따나 ‘엉킴’의 미학이다. 특정 지역의 특수성에서 행성 전반이 가진 보편성을 제시하는 주제와 오브제의 연결도 자연스럽다. 과거와 현재의 연결에 이어 미래를 향한 관점까지 제시한 작품들은 울림을 준다. 특히 사소해 보이지만 기후위기 등을 감안해 전시 곳곳에 친환경 소재를 활용한 점도 눈에 띈다.

광주비엔날레 관람객들이 전시장을 둘러보고 있다. Ⓒ옥션데일리
광주비엔날레 관람객들이 전시장을 둘러보고 있다. Ⓒ옥션데일리

다만 비엔날레의 정체성인 파격과 혁신을 통한 담론 생산, 새로운 방향성 제시 등이 부족하다는 일부 비판도 상존한다. 특히 광주비엔날레와 접점이 없는 ‘박서보 예술상’을 만들었다가 비판의 목소리가 거치자 한 달 만에 이를 폐지했다. 독재에 부역했던 예술인을 광주정신을 내세운 비엔날레가 추켜세운 것은 명백한 오점이다. 이는 포용도 회복도 아닌, 물을 거스른 행위다. 세상과 행성적 고민을 예술에 담은 참여작가들에 대한 모독이기도 하다.

이렇게 아쉬운 점과 함께 참여작가인 카자흐스탄의 바킷 부비카노바가 최근 지병으로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이 들렸다. 이번 비엔날레에 19세기 프랑스 화가 툴루즈 로트렉을 떠올리게 하면서 중앙아시아 전통 예술을 재해석한 회화는 그의 마지막 전시가 됐다. 삼가 고인의 명복과 애도를 빈다. 

광주비엔날레는 7월 9일까지 이어진다. 보다 상세한 정보는 이곳을 참고하면 된다. https://14gwangjubiennal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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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onathan Feel
Jonathan Feel

김이준수는 한국 주재 옥션데일리 필진이자 편집자이다. 언론, 사회적경제, 마을공동체, 공정무역 커피업계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했고 글을 쓰고 있다. 예술이 사회·시대와 동떨어져 있지 않으며, 예술이 지구와 인류의 지속가능성을 위한 도구가 될 수 있음을 인식하고 있다. 한국의 좋은 작품과 아티스트를 많이 소개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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