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션리뷰] ‘낯설게 하기’를 선사하는 이명호의 예술적 전진

Ji Young Hu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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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지영의 Korea Contemporary Artist] 아티스트 이명호②

이명호 작가를 일컫는 별칭은 ‘나무 작가’다. 그의 작업 전반을 아우르는 ‘사진-행위(Photography-Act) 프로젝트’ 시작점인 ‘나무 연작(Tree Series)’ 때문이다. 나무 뒤에 캔버스를 설치한 이 작업들은 이명호를 대표하는 시그니처가 됐다. 그의 이런 작업은 “캔버스 하나만으로 예술이 될 수 있다”는 생각에서 비롯됐다. 그는 한 인터뷰에서 “단순한 작업 같지만, 그 안에는 숱한 뷰 포인트와 레이어가 있고, 결과물을 놓고 다양한 해석이 가능하다”고 말한 바 있다.

이명호 작품을 물끄러미 바라보면, 사진 표면 너머에 있는 나무와 공간이 실재인지, 허구인지 헷갈리기도 한다. ‘낯설게 하기(Alienation effect)’다. 즉, 익숙하고 평범해 보이는 풍경에서 역설적으로 낯선 공간을 경험한다. 독일 극작가 베르톨트 브레히트가 말한 그것이다. 일상적 사물 등을 외부 시선으로 바라봄으로써 낯익은 것의 새로운 측면을 드러내 현실을 상기 혹은 환기하고자 하는 것.

Tree #18_2_4, 2021. Image ⓒ이명호
Tree #18_2_4, 2021. Image ⓒ이명호

그의 작품은 이처럼 실재하는 사물과 공간이지만, 미니어처로 조작된 마냥 혼동을 불러 일으킨다. 나무 연작을 보면, 필수 요소만 남은 최소화된 풍경으로 나무 크기나 거리감을 쉽게 감지하기 어렵다. 한마디로 시각적 교란이다. 그는 과장이나 왜곡된 원근법에 의한 눈속임이 아닌 실재 대상에 대한 선택과 기록이라는 사진의 본디 속성을 이용해 이를 드러낸다. 이는 분명 새롭고 색다른 경험이다. 이른바 ‘무주의 맹시’(Inattentional blindness, 시야에 있지만 주의가 다른 곳에 있어 사물을 간과하는 현상)때문에 인식하지 못한 들판의 나무가 캔버스로 인해 갑자기 도드라져 보이고 풍경에서 분리돼 다가온다. 이 경험이 놀라운 것은 색(color)과 형(shape)의 조형언어가 아닌 온전히 사진 매체를 이용해 재현되기 때문이다.

 “크게 〈Tree〉, 〈Mirage〉, 〈Heritage〉, 〈Nothing But〉로 범주화 되는 내 작품 중 관객들에게 지금까지 가장 많이 소개해 온 작품이 〈Tree〉연작이다. 첫 번째 ‘재현’의 범주는 야외의 나무 뒤에 캔버스를 펼치고 사진을 촬영하는 〈Tree〉연작과 연동된다. 두 번째 ‘재연’의 범주는 사막 바닥에 커다란 캔버스를 펼쳐서 바다와 오아시스 이미지를 만드는 〈Mirage〉연작과 연동된다. 그리고 세 번째 ‘사이 혹은 너머’의 범주는 인화지에 잉크가 올라간 사진의 표면을 긁어내어 아무것도 남지 않는 이미지로 만드는 〈Nothing But〉과 연동한다.”

_ 2021.8.11. 평론가 김성호와 이명호의 인터뷰 중에서

지금 생생하면서도 진화한 이명호 작품을 만나고 싶다면 현재 제주에서 열리고 있는 2022 제주 비엔날레 방문을 권한다. <Nothing but>이 가진 이미지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는 실험작이 펼쳐지고 있다. 예술가로서 오랜 사유의 과정이 집적돼 있는 작품이다.

좌: Color_Mandarin #1_Jeju Biennale, Installation View 2, 2022. 우: Color_Mandarin #1_Jeju Biennale, Installation View 3, 2022. Image ⓒ이명호
좌: Color_Mandarin #1_Jeju Biennale, Installation View 2, 2022. 우: Color_Mandarin #1_Jeju Biennale, Installation View 3, 2022. Image ⓒ이명호

이 작품에는 거대한 캔버스를 포도와 감귤에 물들이는 과정의 긴 시간과 행위가 온전히 기록되어 있다. 사진-행위(Photography-Act) 프로젝트는 제주비엔날레에 선보인 8m 높이의 거대한 캔버스 작업에 이르러 또 다른 실험에 돌입했다. 물들이고 말리는 반복 행위의 과정과 시간이 집적돼 감귤빛깔 캔버스는 조각인 듯 설치인 듯 모호한 경계에 있다. 은은한 감귤 향이 코끝에 와 닿는 후각적 자극은 덤이다. 당신이 은근하나 거부하기 어려운 이 대형 캔버스 앞에 선다면 잠시 압도당할 것이다. 캔버스를 둘러싼 작가의 상상과 사유는 또 어디로 향할까? 당신에게 그의 전진하는 예술적 행보를 바라보는 즐거움을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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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i Young Huh
Ji Young Huh
Korean Art market observer & columni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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